목차

Wiki/바이브 코딩

어디로 가는가

  1. 1예측의 반감기
  2. 2힘 1 — 코드가 사라져도 판단은 남는다
  3. 3힘 2 — 평균으로 끌어당기는 힘
  4. 4힘 3 — 저작과 크레딧의 이동
  5. 5힘 4 — 문턱은 내려가고, 임금도 내려간다
  6. 6힘 5 — 통제는 위로, 작품의 수명은 아래로
  7. 7두 개의 공예
  8. 8수업에서

어디로 가는가

예측의 반감기

2023년 1월, 매트 웰시는 Communications of the ACM에 "프로그래밍의 종말"을 썼습니다: "컴퓨터 프로그램을 쓸 필요가 더는 없을 것"이고,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"프로그래밍되는 게 아니라 훈련되는 AI 시스템"으로 대체되며, 언어 모델은 "자연어로 프로그래밍되는 가상 기계"라는 것 [42]. 2년 뒤 Karpathy가 "바이브 코딩"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[1], 그로부터 1년 뒤 같은 사람이 회고를 남깁니다: "오늘(1년 뒤), LLM 에이전트를 통한 프로그래밍은 전문가의 기본 작업 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— 다만 더 많은 감독과 검토와 함께" [43]. 그는 이것을 "에이전틱 엔지니어링"이라 부르고, 바이브 코딩은 "바닥을 올리는 것", 에이전틱 엔지니어링은 "천장을 끌어올리는 것"이라고 나눕니다.

세 시점을 겹치면 두 가지가 보여요. 첫째, 도구 이름은 1년마다 바뀌지만 방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— 사람은 코드에서 멀어지고 판단에 가까워집니다. 둘째, 가장 낙관적이었던 사람조차 "감독"을 되찾아 왔다는 것. 잘 하는 법의 "보는 법"이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인 이유입니다.

힘 1 — 코드가 사라져도 판단은 남는다

Sarkar와 Drosos는 전문성이 "쓰기에서 평가하고, 이끌고, 다듬기로 방향을 바꾼다"고 했고 [2], Ge 등은 개발자를 "의도 표현자, 맥락 큐레이터, 품질 심판"이라 불렀습니다 [7]. 크링스 등은 한 발 더 나가 프로그래밍을 "표현적이고 사변적인 실천"으로, 코드를 "창작의 잔여물"로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합니다 [9].

예술 쪽에서 이것은 낯설지 않습니다. 셰이더 진화 시스템에서 사용자는 이미 "창의적 큐레이터"이고 [33], 737명 실험에서 사람이 남긴 것은 두 가지 — 방향(무엇을 바꿀지 보는 눈)과 선택(이걸 두나, 되돌리나) — 뿐이었습니다 [17].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가 자기 작업을 "서사가 창발하는 규칙과 환경을 설계"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은 자리예요. 규칙을 쓰고, 시스템이 실행하고, 관객이 경험하는 구조에서 작가의 자리는 이미 코드 바깥이었습니다. 바이브 코딩은 그 자리를 모두에게 열었을 뿐입니다.

열린 질문: 규칙을 쓰는 사람과 규칙을 실행하는 시스템 사이 어디에 "작품"이 있는가. 프롬프트가 작품인가, 결과가 작품인가, 둘 사이의 선택의 기록이 작품인가.

힘 2 — 평균으로 끌어당기는 힘

히토 슈타이얼은 생성 이미지를 "평균 이미지(mean images)"라 불렀습니다. "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통계적 렌더링"이고, "사실성은커녕 진실이 아니라 확률을 가리키며", "사진적 조명의 충격을 벨 곡선, 손실 함수, 긴 꼬리의 끌림으로 대체"하고, "평균과 중앙값 주위로 수렴하는 환각된 평범함"이라고 [47]. 같은 힘이 코드에도 작용합니다: 웹 바이브 코딩은 "인터넷의 통계적 평균으로 훈련된 모델이 보편적 동질화기가 되는" 되먹임을 만들고 [28], 통제 실험에서 LLM은 자유도가 큰 과제일수록 해답을 서로 닮게 했습니다 [25].

되먹임의 끝은 이름이 있습니다. 모델이 만든 데이터로 다시 학습하면 "원래 분포의 꼬리가 사라지는 돌이킬 수 없는 결함"이 생긴다 — Nature에 실린 "모델 붕괴"입니다 [45]. 2026년의 후속 연구는 이것을 코드에 적용했어요: AI 코드가 저장소에 들어가 다시 훈련 데이터가 되는 순환에서, 검토가 없으면 가장 빨리 무너지고, 컴파일·품질 규칙 같은 사람 쪽 필터는 늦출 뿐 막지 못하며, 모델이 스스로 검토하는 것은 그 대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[46]. 두 논문의 결론이 같습니다: "진짜 사람의 상호작용에서 나온 데이터의 가치가 점점 커진다."

예술에게 이것은 위협이면서 정의(定義)입니다. 평균이 삼키는 것은 꼬리 — 희소한 것, 지역적인 것, 아직 이름 없는 것 — 이고, 그 꼬리가 예술이 있던 자리예요. 부산의 방언, 국악의 시김새, 형제복지원 생존자의 구술, 수집품 14년치는 어느 훈련 데이터에도 평균으로 들어 있지 않습니다. 잘 하는 법 23번("내 재료를 넣는다")은 요령이 아니라 위치 선언입니다.

열린 질문: 내 재료를 넣는 것으로 충분한가, 아니면 도구 자체가 평균을 향하는 이상 결과를 평균에서 밀어내는 노동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가.

힘 3 — 저작과 크레딧의 이동

2025년 1월 미국 저작권청은 생성 AI 결과물의 저작권 보호 요건을 정리했습니다: 사람이 충분한 표현적 요소를 결정한 경우에만 보호되고, 순수 AI 생성물은 보호되지 않으며, AI를 "대신"이 아니라 "보조"로 쓰는 것은 보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[49]. (미국 기준입니다. 한국의 판단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.) Science의 관점 논문은 다른 방향의 이동을 경고합니다: 관객이 AI에 의도와 행위성을 부여할수록 "인간 예술가에게 돌아가는 크레딧은 줄고 기술을 만든 쪽의 크레딧은 늘 수 있다" [44]. 실무자들은 이미 대응을 시작했어요 — "AI를 공저자처럼 다루자. 프롬프트를 기록하고 어디서 AI가 개입했는지 적자" [19]. 전자문학 쪽은 아예 "인간의 창의성, 알고리즘 과정, 기존 디지털 재료에 분산된 저작"을 시학으로 받아들입니다 [40].

이 프로그램에서 저작은 12월 크리틱에서 묻게 됩니다. 물어볼 것은 "AI를 썼는가"가 아니라 "무엇을 골랐고, 무엇을 거절했고, 왜" 입니다. 그 답이 있으면 저작권청 기준으로도, 관객의 "의도 짐작" 기준으로도 작가는 작가입니다. 잘 하는 법 24번(프롬프트를 기록한다)이 여기 걸려 있어요.

열린 질문: 프롬프트·거절·선택의 기록을 작품과 함께 전시하는 것은 투명성인가, 새로운 형식인가, 아니면 작품을 설명으로 대체하는 실수인가.

힘 4 — 문턱은 내려가고, 임금도 내려간다

Science 논문의 경제학 절은 냉정합니다. 생성 도구는 "진입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창작 과제를 효율화"하므로 "예술가로 일하는 사람의 수는 늘어도 평균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";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사니 "같은 양의 결과를 더 적은 사람이" 만든다; 일러스트·스톡 사진 같은 발주형 직종이 먼저 밀린다. 그리고 역사의 반복: 산업혁명이 도자·직물을 대량생산하자 "손으로 만든 것은 더 큰 예술적 의도를 가진 사치품이 되었다" [44]. 바이브 코딩 실무자 설문에서도 비개발자의 첫 동기는 "내가 못 만들었을 것을 만들 수 있다"였고 [6], 동시에 다른 연구는 "API 크레딧과 강력한 기계에 대한 의존 — 배제와 기술 엘리트주의"를 우려합니다 [9]. 진(Jin)의 말로는, 프로그래밍 언어의 상징적 역량이 사유화되고 있습니다 [10].

우리 조건에 대입하면: 재단이 구독료를 4개월 지원합니다. 그 뒤에도 작품이 돌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— 이 질문이 12월 이후의 첫 질문입니다.

열린 질문: 문턱이 사라진 세계에서 "예술가"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. 도구 접근인가, 판단인가, 시간인가, 아니면 평균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인가.

힘 5 — 통제는 위로, 작품의 수명은 아래로

프롬프트 상자 하나로 납작해진 인터페이스 아래에는 더 두꺼운 층이 생겼습니다 — 원격 GPU, 모델 제공자, 함수 호출·MCP·에이전트 프로토콜. "통제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대화로 옮겨 가면서 모델과 프로토콜 제공자에게 집중된다" [10]. 가격 변경과 서비스 중단은 개인 작가에게 곧장 닿습니다 [3]. 한편 창작 코드 저장소 161만 개를 조사한 연구는 이미 5.5%가 사라졌고, 생성 예술이 "자산·기기 프로토콜·API라는 취약한 공급망"에 의존하며, 플래시 시절의 넷아트는 벌써 실행되지 않는다고 보고합니다 [36].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생성 코드는 보존이 더 어렵습니다.

그래서 이 위키가 첫날부터 "브라우저 한 장"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. HTML 한 장은 그 층들 중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— GPU도, 구독도, 프로토콜도 없이 2036년에도 열립니다. 위로 올라갈수록(API, MCP, 원격 모델) 작품은 강력해지고 수명은 짧아집니다.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작품마다 정하는 선택이고, 12월 설치 전에 "전원을 뽑았다 꽂으면 다시 도는가, 인터넷이 끊기면 어떻게 되는가" 를 묻게 될 겁니다.

열린 질문: 작품의 수명을 얼마로 잡는가. 전시 3일이면 되는가, 10년을 바라는가. 그 답이 어느 층까지 올라갈지를 정한다.

두 개의 공예

디자인 교육 연구는 데이비드 파이의 구분을 빌립니다 — 결과가 만드는 동안 위험에 놓이는 "위험의 공예"와 결과가 보장되는 "확실성의 공예" [26]. 도구가 결과를 보장하는 쪽으로 갈수록(확실성), 예술은 반대편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이 위키의 가설입니다. 컴프턴이 말한 "통제를 속도·힘·놀라움과 교환하는" 캐주얼 크리에이터 [38]는 확실성 쪽의 즐거움이고, 브리콜뢰르가 "붓질 사이에 물러서서 보는" 것 [37]은 위험 쪽의 즐거움이에요. 둘 다 정당하고, 둘 다 이 프로그램 안에 있습니다. 첫날의 시제작은 확실성 쪽에서 시작해 — 되는 경험 하나 — 12월에는 위험 쪽에 서 있기를 바라는 것이 이 커리큘럼의 방향입니다.

마노비치와 아리엘리는 이미 2022년에 "AI 시대에 누가 예술가인가"를 물었고, 2024년에 "도구에서 저자로", 그리고 "인간에 의한, 인간을 위한? 미적 정렬의 문제"로 끝맺었습니다 [48]. 마지막 질문이 정확합니다. 평균 이미지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만듭니다. 설명이 아닌 직접 경험 — 놀이와 체화로 관객이 스스로 발견하는 것 — 은 통계적 렌더링이 아직 만들지 못하는 것이고, 이 프로그램의 첫 줄에 적힌 방법론입니다.

수업에서

《2026 오픈서킷 부산: 아트앤테크 프랙티스》 수업 자료 · 글·기획 배준형